1989년 봄과 여름 사이 천안문 광장에서 발생한 민주화 운동과 6.4 학살 사건의 전체 기록물.
중국 응급관리부, 민정부 등 부처가 피해 지역을 돕기 위해 1억 6천만 위안의 중앙 자연재해 구호기금을 긴급 배정했다. 진행자는 이 금액이 너무 적다고 지적하며, 각 성에 배정된 평균 금액이 2천만 위안에 불과해 재난 대응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중국공산당 관료들의 심각한 부패를 비판했다.
6·4 톈안먼 사건 기념일을 앞두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6·4 톈안먼 사건 기념관에 신원 미상의 이들이 침입해 파손 행위를 저질렀다. 여러 전시품과 벽면, 전시 공간이 스프레이로 훼손되었으며, 기념관 측은 FBI와 의회에 이를 신고했다.
동독은 1989년 10월 7일에도 성대한 열병식을 거행했으나, 막대한 부채와 지도부의 1989년 6·4 톈안먼 사건 지지가 민심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면서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크렌츠가 총서기로 취임한 후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중국공산당 고위층과 맹목적으로 악수한 것이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고, 결국 1년도 안 된 1990년 10월 3일 서독에 흡수되었다.
중국 학생들과 시민들이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개혁, 반부패, 자유를 요구하다가 군대와 탱크의 무력 진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