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후진타오·원자바오·쩡칭훙 등 원로들이 비공개로 무허회를 열어
인터넷에서 후진타오, 원자바오, 쩡칭훙 등 은퇴한 원로들이 비공개로 무허회를 열어 노선과 은퇴 제도를 논의하고, 최근 과도하게 강조해 온 국가안보를 되돌리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나, 회의가 실제로 열렸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후진타오, 원자바오, 쩡칭훙 등 은퇴한 원로들이 비공개로 무허회를 열어 노선과 은퇴 제도를 논의하고, 최근 과도하게 강조해 온 국가안보를 되돌리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나, 회의가 실제로 열렸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2026년 9월 중순, 해외에서 원자바오가 5차 전체회의 이후 의제를 최고지도자 거취에서 더 나아가 정치체제 개혁 재개로 밀어붙이기를 바란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른 설로는 당내 보수 세력이 이에 제동을 걸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현재 어떠한 공식 문서도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제보에 따르면 원자바오는 '사람을 먼저 올리고 계산은 나중에 한다'는 전략을 택해, 10월 오중전회에서 후춘화를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밀어 올리고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추가 보임해 후계자가 먼저 총을 잡게 함으로써, 시진핑이 즉시 퇴진할지 여부라는 정치적 얽힘을 우회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원자바오(温家宝), 쩡칭훙(曾慶紅), 왕치산(王岐山) 등 13명의 은퇴한 정국급 원로들이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고위급 정치 행사에 참석했다. 후진타오(胡锦涛)의 불참으로 인해 베이다이허(北戴河) 밀담과 권력 이양에 관한 다양한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원자바오가 중국과학원 지리연구소에 모습을 드러내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웬지아바오는 3월 말 베이징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관련 보도는 이를 시진핑의 옛 체제 정산 일정과 연결시켰다.
원자바오가 베이징 중국지질과학원을 시찰했는데, 그가 탑승한 차량의 번호판이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소속인 것으로 지목되어 원로들과 군의 연계에 대한 외부의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리쭤청 등 장성이 제38군 중장비 부대의 베이징 진입, 항공 통제, 수도 계엄 계획을 제안했으나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에 의해 저지되었다는 제보가 있으나, 이설을 뒷받침하는 공개 보도는 없다.
올해 1월 원자바오는 직접 왕이 외교부장을 여러 차례 면담하고 외교부 내부의 잠재적 위험과 붉은 귀족 가문의 자금을 세탁하는 비밀 통로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2025년 6월 말에 설치된 중앙 결정 심의 조정 기구가 7인으로 구성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조장은 원자바오가 맡고, 구성원에는 리루이환, 쭈칭훙, 왕양, 시진핑, 자오러지, 리창이 포함되며 1인 1표이고, 정치국 위원은 사전에 이 소조에 지시를 요청하고 보고해야 한다고 전해진다.
해외 소식통에 따르면 온자바오가 당중앙 결정·의론 조정기구 설립을 추진하고 본인이 조장을 맡았으며, 중대 결정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시진핑은 중난하이 펑저위안에서 사실상 연금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한다.
원자바오가 국무원 총리직에서 물러나 총리 임기를 마쳤다.
뉴욕 타임스는 세계를 뒤흔든 탐사 보도를 통해 원자바오 일가의 친인척들이 약 27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비밀리에 통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 3월 14일 원자바오는 양회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며 정치체제 개혁이 없이는 경제체제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문화대혁명의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2년 3월 원자바오는 총리로서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당과 국가 지도체제 개혁을 거론하며, 정치 개혁이 정체되면 경제 개혁의 성과를 다시 잃을 수 있고 나아가 문화대혁명과 같은 역사적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 날 보시라이가 충칭시 당서기직에서 해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