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 '혁명의 청사진'이라는 신화는 이제 깨져야 한다
이전에 어떤 이들이 이 책을 추천하며 중국의 저항 운동을 지도하는 성경으로 떠받들었다. 나는 본래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고, 평화 투쟁과 무장 투쟁의 결합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기에 그 방법론 중 일부를 지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몇몇 이들이 일신론적 오만함으로 다음과 같은 거슬리는 잡음을 냈다. 비폭력 운동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폭력을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내가 신화의 가면을 벗겨버린다 해도 탓하지 마라.
내가 이전에 말했듯이, 폭력과 비폭력은 그 명칭에서부터 비폭력이 폭력에 대해 강한 겨냥, 부정, 그리고 적대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폭력을 주장하는 이들은 폭력을 그토록 악마화하면서도, 자신들 주장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군경의 전향을 이끌어내는 것—이 본질적으로 폭력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저항자들에게는 스스로 폭력의 힘을 갖추는 것은 부적절하며,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적의 폭력 기구를 자극해 진압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이보다 더 블랙 코미디 같은 나약한 논리가 어디 있겠는가?
비폭력 이론은 이미 고도로 산업화되고 정치적 올바름(PC)화되어, 협력하는 각 층위가 모두 이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다. 서방 국가의 정부, 기업, 각 NGO 뒤의 물주들은 중국이나 다른 전제 정권을 자극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계속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한다. 언론, 출판, NGO 등의 조직과 개인들이 원하는 것은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 아니라 더 아름다운 도덕적 서사이며, 이는 그들이 더 많은 명성과 이익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혁명의 청사진》의 저자는 비폭력 이론과 핵심 간부를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양성하는 인물로, 그의 세일즈 욕구는 너무나 강렬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순진하며 이미 파산한 예측을 내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자신조차 인정했듯이, 트렌드에 대한 그의 예측은 자주 빗나갔다. 예를 들어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그는 애플사가 곧 파산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책에서 시리아와 미얀마에서의 비폭력 운동의 밝은 전망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해 늘어놓았고, 폭력 주장이 아사드의 결심을 굳히게 만들어 변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사실은 어떠한가? 전자는 결국 여전히 무장 투쟁을 통해 아사드를 축출했고, 후자는 아직 끝나지 않은 내전으로 접어들었다.
그의 예측은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증명되었으며, 현실에서 그의 친구들이 그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단지 반대 의견을 얻기 위해서일 뿐이다—그들은 그의 판단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그를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 중국의 이 엘리트들은 그가 파는 물건을 혁명의 청사진으로 받들겠다는 것인가?
그가 주장하는 밀로셰비치를 축출한 경험 또한 자화자찬에 불과해 보인다. 역사적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밀로셰비치의 권력 기반이 나토와의 충돌에서 겪은 군사적 패배로 인해 이미 완전히 흔들렸음을 알고 있다. 그의 실각은 지정학적, 경제적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것이 바로 근본 원인이다.
책에서 인용된 이른바 클래식한 모범 사례들과 '권위 있는 데이터'라는 것들 또한 모두 의구심을 자아낸다.
예를 들어 이집트 무바라크의 실각은, 그 배경에 여러 요인이 겹쳐 있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마지막 거리 운동만 보더라도 극도로 격렬한 폭력 충돌을 수반했다. 800여 명이 사망하고, 6,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00여 곳의 경찰서가 불탔다…… 그런데 비폭력 이론 고취자들은 이에 대해 극도로 축소하거나 입을 다물고, 모든 것을 비폭력의 성공 덕으로 돌린단 말인가?
필리핀 마르코스의 실각 또한 마찬가지다. 진지한 역사가라면 누구나 수만 명에 달하는 좌익 게릴라 무장 대원들의 수년간에 걸친 타격 작전이 마르코스 정권의 자원과 위신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켰음을 인정한다. 이것들이 없었다면 아키노의 이후 대규모 시위는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폭력 이론 판매원들에게서 이러한 점들은 당연하게도 무시되었다.
내가 누누이 말했듯, 그들이 자신들을 빛내기 위해 가져다 쓰는 이른바 사례들은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깊이 파고들어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밑천이 드러난다. 또한 이른바 모델 계산으로 나왔다는 데이터들, 예를 들어 폭력이 비폭력의 성공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정확하다는 것 등은 참으로 '과학적'이다. 대학 시절 이와 유사한 논문을 날조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속아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금과옥조로 받드는 성공 사례들은 분명 다소간 폭력이나 폭력적 억제력의 역할에 기대었음에도, 그들은 도리어 배은망덕하게 다리를 끊어버리고 자신들을 위한 희생양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실패한다면, 그 이유는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하고 우리의 비폭력 규율을 엄격히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식이다.
이것이 과거 린뱌오가 마오쩌둥의 실책을 억지로 합리화해 주던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실패는 마오 주석의 말씀이 틀려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 마오 주석의 말씀을 듣지 않았거나, 충분히 잘 듣지 못하고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논리 말이다!
이러한 정치적 궤변은 우리가 이미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또한 비폭력으로 세워진 민주주의가 더 안정적이고 질이 높다는 식의 주장 역시 사실은 인과를 전도한 것이다. 특정 국가가 세운 민주주의의 질과 안정성은, 건립 방식이 폭력적인지 여부를 포함하여, 모두 그 자체의 상황과 시대적 배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건립 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여러 민주 대국들 중 폭력에 기대어 세워지지 않은 나라가 몇이나 되겠는가?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그 수다들—중공은 너무 강대하다, 무장 투쟁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중국에 그와 유사한 지하 조직을 세우는 것은 가망이 없다, 너희는 총 한 자루 포 한 발 쏴본 적 없다…… 우리가 시도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조직도 만들고 쏘기도 하지 않았는가? 당국이 우리를 전멸시켰는가?
이른바 불가능이라는 것과 중공 무적론은 모두 사람에 의해 깨질 수 있는 신화다.
많은 일들의 답은 감히 시도할 용기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시도하지 않으면 성공 확률은 0이지만, 시도하면 성공 확률은 0이 아니다. 이처럼 단순한 상식을 굳이 다시 반복해야 한단 말인가?
알제리 독립 투쟁은 처음에 전사 5명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수만 명으로 성장하여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아일랜드 공화국군(IRA)도 처음에는 몇 명 규모의 소조에 불과했으나, 결국 아일랜드의 독립과 북아일랜드의 자치를 얻어냈다.
이스라엘 건국 시기의 지하 무장 조직 또한 처음에는 수십 명에 불과해 전국에 흩어져 미미한 존재였으나, 점차 세력을 키워 마침내 영국을 물러나게 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우리는 본래 30년을 헛되이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검은 피와 불 속에서 너무나 오래 담금질되었으니, 오직 당신이 그것을 뽑아 들고 용기의 표식을 새기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표식으로,
그대는 승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