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내 반적이 해석하는 '노인 재취업'과 '탕핑은 해외 세력의 선동'의 진상
나는 체제 내(体制内)에 속해 있으며, 이전에 트위터에서 탕핑(드러눕기) 관련 기고를 본 적이 있다. 오늘 시간이 나서 내 소회를 적어 본다. 반드시 발표해 주시길 바란다. 동료들도 보게 될 것이라 믿는다.
우선, 체제 내에서 시진핑 개인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기층 공무원은 사실 적지 않다. 원인도 아주 간단하다, 하하, 그의 능력과 판단력은 중앙의 선전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결코 그렇게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오쩌둥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엉망진창 일을 벌이면서, 우리더러는 전도사처럼 기층에서 그를 선전하라고 요구한다.
나 자신은 북방의 체제 내 환경을 접하고 있다. 느끼는 바가 많다. 많은 일들이 일반인의 시각에서만 본다면 황당하고 잔인하며 심지어 상식 밖으로 보이겠지만, 여러분이 중앙 자체의 통치 논리에서 본다면 대체로 또 자체적으로 앞뒤가 맞는다. 우리처럼 나랏돈을 받아먹는 사람이어야 겨우 한두 가지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탕핑’을 ‘해외 세력의 지원’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첫 반응은 조롱이며 참으로 황당무계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상 중앙은 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기층 공무원의 모든 불복종, 비협조, 혹은 그저 단순한 효율 저하 따위의 행위를 모조리 정치 문제로 해석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탕핑’이 현실의 압박 아래서 나온 자발적 선택임을 인정하는 순간, 체제 자체에 문제가 생겼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먼저 하나의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정식 편제(編制)를 가진 우리 같은 사람들은 붉은 깃발 아래의 ‘기인(旗人)’들이다. 우리는 체제의 밥을 먹고, 그들의 통치 질서에 복무한다. 이 신분 때문에 수많은 정책이 체제 내부의 이익 집단에 복무하도록 설계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기층 민중에게 복무할 차례가 돌아온다. (뭐라고? 당신들이 우리한테 복무받기 싫다고? 그건 당신들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가장 단순한 예 하나를 들어보자: 노인 재취업 장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조롱하며, 저 기층의 농촌 호적 노인들이 평생 노동하다가 일터에서 과로사하길 바라는 것이냐고 말했다. 하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라. 중앙이 기층의 상황을 모르겠는가? 한 달에 불과 100여 위안의 양로금을 받는 농민 노인들은 늙어서 돈도 없고 사회보험도 없으며, 자녀들은 보통 외동이라 위로는 노인을 모시고 아래로는 아이를 키워야 해서 부모를 온전히 부양할 능력이 전혀 없다. 이런 노인들은 아무런 정책적 장려가 없더라도 계속 밖으로 나가 일할 수밖에 없다.
이것 자체로 이미 대단히 병적인 상태다. 한편으로 그들은 자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간의 노동과 신체 소모로 인해 더 일찍 세상을 떠남으로써 또 다른 의미에서 가정의 노인 부양 부담을 덜어준다. 기층 노인들에게 재취업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권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정책의 진짜 더 깊은 서비스 대상은 체제 내부에서 권력에 탐닉하며 퇴직하기를 꺼리는 자들이다. 맞다, 여러분도 짐작했겠지만, 정책을 통해 실질적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체제 내에서 자원을 쥐고, 자리를 쥐고, 결재권과 인사권을 쥔 노간부와 노영도(원로 간부)들이다. 그들은 은퇴를 원치 않는다. 은퇴는 곧 권력을 잃는 것이며, 자녀에게 계속해서 이익을 몰아줄 수 있는 능력을 잃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인 재취업’이라는 이 수사는 그들이 권력 구조 안에 계속 머무는 것을 합리화해 주었다.
기층 노인들에게 재취업은 살아남을 길이 없어서이고, 체제 내 노인들에게 재취업은 권력을 놓지 못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그 차이다.
따라서 많은 정책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 전체를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진정 복무하는 대상은 체제 내부의 권력 연장과 이익 분배다. 일반인이 보는 것은 황당함이고, 체제 내에서 보는 것은 이익 안배다. 당신은 그것이 멍청해서 그런 줄 알겠지만, 실제로는 제 식구를 챙기는 것이다. 당신은 그들이 민생을 몰라서 그런 줄 알겠지만, 그들은 애초부터 당신들을 첫 번째 자리에 둔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중앙 정치의 기본 논리이며, 너무나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올바른(偉光正)’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가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 체제는 이익을 분배하고, 권력자는 정책을 빌려 수명을 연장한다.
마찬가지로 ‘탕핑은 해외 세력이 선동한 것’이라는 말 역시 그저 멍청한 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 이면에서 진짜로 처리하려는 대상은 시진핑에게 불만을 품고 태업을 시작한 체제 내 사람들이다.
황제에게 불만이 있으니 당연히 그를 위해 진심으로 목숨 바쳐 일하지 않을 것이고, 진심으로 일하지 않으니 일은 겉돌기 마련이며, 일이 겉돌면 전체 행정 시스템은 일종의 저효율 헛돌기 상태로 변한다. 사람은 여전히 직장에 있고 월급은 꼬박꼬박 받으며 복지도 그대로 누리지만, 집행력과 적극성, 충성도는 모두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축나서 무너지는 것은 시진핑 자신의 재정과 통치 기구다.
그래서, 흠흠, 체제 내에서 ‘밥만 축내고 일은 안 하는’ 젊은이들, 특히 아무런 줄도 없고 배경도 없으며 파벌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하나의 새로운 정치적 딱지가 붙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른바 해외 세력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해외 세력에게 선동당했다는 것이다.
중앙의 논리는 사실 대단히 단순하다. 네가 체제 내에서 재정의 부양을 받으면서도 중앙에 적극적으로 복무하지 않으며, 네게 권력 배경도 없고 대체 불가능한 영향력도 없다면, 너는 그저 소극적이고 침묵하며 비효율적인 재정 부담일 뿐이다. 그렇다면 너의 ‘탕핑’은 정치 문제로 해석될 것이며, 심지어 해외 세력이 침투한 결과로까지 해석될 것이다. 까놓고 말해, 이것은 시진핑 버전의 ‘한군출기(漢軍出旗)’와 다소 비슷하다. 청나라 팔기(八旗) 제도 아래서 기인들은 국가의 부양에 의존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재정 압박이 점점 커지자, 청 조정은 팔기 내부의 생계 위기를 해결해야만 했다. 이른바 ‘한군출기’란 원래 기적(旗籍) 시스템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일부를 강제로 배제하여, 국가 부양 시스템에서 벗어나 일반 평민으로 전환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체제 내 일부 청년들의 처지 역시 이러한 논리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본래 체제 부양 시스템의 일원이었으나, 재정 압박이 커지고 충성도가 떨어지며 이용 가치가 부족해지자 ‘문제 인구’로 재정의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제 식구가 아니다. 류창둥(동거)의 말을 빌리자면, 너는 더 이상 우리의 형제가 아니라 부담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연줄이 없는 이들은 정리되고, 감축되며, 재분류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탕핑은 해외 세력이 선동한 것’이라는 따위의 수사가 쓰이는 용도다. 그것은 새로운 정치적 선별 기제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즉, 누가 적극적으로 충성하지 않는지, 누가 계속해서 몸 바쳐 일하지 않는지, 누가 자신이 중앙에 유용한 존재임을 증명하지 못하는지 가려내어, 그런 자는 언제든 ‘제 식구’의 범위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