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군(習家軍) 해산 시작? 후춘화, 5중 전 갑자기 '은신', 시진핑이 국가주석을 안 넘겨도 교체 가능? 딩쉐샹이 승안에서 데이터 장악, 리창 장쑤 옛 부하가 윈난 급파! 중기위와 6개 부문이 은퇴·가족·형집행정지 세 가지 퇴로를 동시에 봉쇄!【강펑 시각 20261022 제520회】
본문은 중국공산당(CCP) 제5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5중전회)를 앞두고 변화하는 정치 상황을 고찰하며, 딩쉐샹이 슝안에 국가데이터그룹을 설립해 권력을 집중시키고, 리창의 옛 부하들이 윈난성으로 낙하산 인사로 내려오며, 허리펑 측근 비서의 배경이 드러나는 등의 징후가 '시자쥔(習家軍)'이 각자 퇴로를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여러 부처가 퇴직 간부, 친인척 수뢰, 형집행정지(보외취의)를 겨냥한 엄격한 새 규정을 잇달아 발표하고, 다수의 관료 낙마와 민영기업 2세 조사 사건이 이어지면서 고위층의 동요가 가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본문은 후춘화의 최근 잠행이 암시할 수 있는 권력 교체 동향을 분석하고, 덩샤오핑 시기 장쩌민의 과도기적 승계 선례를 참고하여 5중전회에서 지도부 교체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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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장펑 시계(江峰視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자쥔이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5중전회가 열리기까지 5일 남았습니다. 시진핑(習近平) 곁의 가장 충성스러운 몇몇 사람들은 그가 뒷일을 맡기기도 전에 각자 살길을 찾고 있습니다. 10월 20일, 정치국 상무위원 겸 상무부총리인 딩쉐샹은 슝안으로 달려가 직접 새로운 중앙기업의 현판식을 가졌습니다. 리창 총리는 해외 순방 중인데, 국내에서는 그의 장쑤성 시절 옛 부하를 윈난성 당위원회 상무위원회에 밀어 넣는 인사가 발표되었습니다. 시진핑의 돈주머니를 관리하는 허리펑조차 그의 곁을 지키는 기요비서가 공청단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대관(大管家)들이 우두머리를 위해 문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하나같이 뒷문을 열어두느라 바쁩니다. 왜일까요? 바로 지난 일주일 동안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정법 시스템이 퇴직해도 조사하고, 가족이 받은 돈도 당신의 몫으로 계산하며, 형을 선고받아도 병원 진단서 한 장으로 나오려던 길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신호를 잇달아 보냈기 때문입니다. 배가 가라앉으려는데 누가 배에 남아 함께 죽으려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 배를 진정으로 이어받으려는 사람은 지난 보름 동안 오히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딩쉐샹(丁薛祥)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10월 20일, 국가데이터그룹이 허베이 슝안에서 현판식을 가졌고, 딩쉐샹은 직접 현판을 올리고 연설을 했을 뿐만 아니라 슝안을 하루 종일 둘러보며 중국싱왕(中国星网)까지 시찰했습니다. 이 회사는 국자위 산하의 100번째 중앙기업이며, 중앙기업 명부에서 28번째를 차지합니다. 중앙기업 명부 앞의 55개 기업은 부부장급이므로, 탄생하자마자 부부장급이 된 것입니다. 그 앞에 있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 차이나모바일 등 3대 통신사에 위성 인터넷을 담당하는 중국싱왕까지 더해졌습니다. 하늘의 위성과 땅의 기지국, 전 국민의 휴대폰과 인터넷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며 그다음 주자가 바로 이 회사입니다. 주주 명단을 펼쳐보면 그 비중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국무원 슝안관리위원회,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 차이나모바일에 국가전력망(국가전력), 남방전력망까지 더해졌습니다. 3대 통신사는 전 국민의 통화와 인터넷 사용을 관리하고, 2대 전력망은 전국의 전력 사용을 관리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데이터들이 하나의 바구니에 모인다면 어떤 개념이 되겠습니까? 어느 공장이 몇 교대로 가동되는지, 어느 아파트 단지가 몇 시에 불이 꺼지는지, 누굴의 휴대폰이 어젯밤 어느 기지국에 머물렀는지 전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경영진도 이 바구니에 맞춰 꾸려졌습니다. 그룹 공식 홈페이지가 열리자 지도부 진용이 다 같이 모습을 드러냈으나 이름만 올라와 있을 뿐 출생 연도와 이력은 단 한 글자도 기재되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따라 조사해 본 결과, 동사장 젠친(簡勤)은 전 차이나유니콤 총경리이고, 당조부서기 청젠쥔(程建軍)은 전 차이나모바일 부총경리, 천하이보(陳海波)는 전 차이나유니콤 베이징 지사 총경리, 총회계사 뤄라이펑(羅來峰)은 전 차이나텔레콤 인적자원부 총경리, 부총경리 후샤오(胡嘯)는 전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네트워크데이터관리국 국장, 기검조장 왕다위(王大宇)는 지린성 기위 부서기 자리에서 조름을 받아 온 이였습니다. 3대 통신사, 인터넷정보판공실, 중앙기위까지 빠짐없이 들어찼습니다. 무대 아래 앉아 있는 이들을 보면, 국가안전부 부부장 위안이쿤(袁亦鲲)이 참석했고, 75년 이후 출생인 중국전자 총경리 리쥔(李峻)이 신임 총경리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데이터를 다루고 사업을 하는 회사의 창립 대회에 국가안전부 부부장이 아래에 앉아 있습니다. 이 바구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은 바로 이 총경리 천룽후이(陳榮輝)입니다. 천룽후이는 푸젠성 출신으로 푸젠에서 20년 넘게 디지털화 건설에 종사하며 디지털 푸젠 사무소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왔습니다. 디지털 푸젠이란 무엇입니까? 2000년 시진핑(習近平)이 푸젠성 성长으로 재직할 당시 직접 제안한 사업으로, 나중에 디지털 중국의 근원으로 포장되어 시진핑이 가장 즐겨 꺼내놓는 치적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023년 국가데이터국이 설립되자 천룽후이는 푸젠에서 베이징으로 차출되어 부국장을 맡으며 시진핑을 대신해 전국 데이터의 문을 지켰습니다. 국가국 부국장은 정청급인데, 이번에 데이터그룹에 들어가면서 곧바로 부부장급으로 승진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천룽후이는 시진핑의 사람이고 딩쉐샹 역시 시진핑의 사람인데, 사람이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옮겨간 것뿐이라면 이게 무슨 분가냐고요.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데이터국은 부처로서 규칙과 문서를 관리하고, 데이터그룹은 회사로서 실질적인 데이터와 막대한 자금을 관리합니다. 시진핑의 푸젠 옛 인맥들이 20년 넘게 지켜온 이 간판이 이제 사람과 업무를 통째로 새로운 중앙기업에 담기게 되었습니다. 무대에 올라 현판을 대신 넘겨준 이는 바로 딩쉐샹입니다. 장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슝안은 시진핑이 직접 지정한 천년의 대계이며, 그가 가장 내세울 수 있는 치적 사업입니다. 딩쉐샹은 하필 이 일을 슝안에서 치렀고, 연설에서는 입만 열면 그분(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중요 정책 결정을 거론했습니다. 시진핑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치적 사업 속에서, 자신의 간판을 내걸고, 자신의 푸젠성 기반을 거두어 가는데 “안 된다”는 말 한마디조차 꺼낼 수 없는 것입니다. 중국공산화 관장이란 늘 이런 식입니다. 정말로 당신의 판을 엎으려 할 때는 결코 면전에서 얼굴을 붉히지 않고, 오직 당신의 이름을 외치면서 당신의 짐을 통째로 옮겨갈 뿐입니다. 게다가 요즘 슝안은 매우 소란스럽습니다. 딩쉐샹이 20일에 떠나자마자 외교부는 23일에 왕이(王毅) 역시 슝안을 방문해 글로벌 거버넌스 포럼 개막식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외국 귀빈들을 접견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저마다 그의 천년의 대계 속으로 몰려가고 있으며, 빌리는 것은 그분의 간판이요, 처리하는 것은 자신들의 일입니다. 딩쉐샹은 5중전회 이후 자신이 어떤 의자에 앉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전국의 데이터라는 이 열쇠를 손에 쥐고 있다면 앞으로 원로들과 조건을 협상하든, 신진 지도부와 권력을 나누든 강력한 패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시진핑을 위해 집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목숨을 건질 보험을 하나 마련하는 것입니다.
딩쉐샹이슝안에서데이터를수집하는동안리창은무엇을하고있었는가? 리창은사람을이동시키고있었다. 10월 17일부터리창은우즈베키스탄을먼저방문한뒤타지키스탄의수도두샨베로이동해상하이협력기구(SCO) 총리회의에참석했고이어서러시아를방문할예정이었다. 비록몸은외국에있었지만국내의인사문제는조금도지체되지않았다. 10월 21일신화통신은단한 줄짜리인사발령소식을보도했다. 왕진젠동지가윈난성위원회위원겸상무위원으로임명된다는내용이었다. 왕진젠은누구인가? 1973년 9월생으로올해 53세이며이전직함은장쑤성양저우시위원회서기였다. 공개된이력에따르면그는오랫동안우시장인에서근무하며장인시위원회서기를지냈고이후양저우로이동해양저우시장과시위원회서기를역임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누가장쑤성위원회서기로있었는가? 바로리창이다. 관가를잘아는사람들이라면이소식을듣고눈썹이한 번씰룩거렸을것이다. 지급시위원회서기는정청급인데일반적인관례상먼저부성장으로승진해부부급을달고다 1~2년을버텨야비로소성위원회상무위원에진입할자격이주어진다. 이처럼지급시서기에서타지역의성위원회상무위원회로직행하는경우는오직한가지상황, 즉정권교체기(인사개편기)에자리를선점할때만나타난다. 윈난성위원회는다음 달에정권교체가예정되어있는데이시점에억지로끼워넣어진사람은새로운지도부에대비해사전에박아둔못과도같다. 물론성위원회상무위원은중국공산당중앙이임명하는것이지총리의인사명령서한장으로해결될수있는일이아니다. 그러나중국공산당관가에서누군가가승진할수있는지는누가서명을했느냐가 아니라누가그를위해한마디를해주었느냐에달려있다. 독자 여러분은이러한인사발령이어떻게만들어진것인지상상해볼수있을 것이다. 중앙조직부가윈난성에배치할상무위원1명을선정하기위해먼저명단을작성한뒤하나씩의견을묻는데명단에여러명이있다면누가앞순위에오를수있겠는가? 이때누군가가한마디를거든다. 양저우의그왕진젠은경제도잘다루고나이도적당하니내가장쑤에있을때보니괜찮은사람이었다는식이다. 그말을한사람의무게가충분하다면명단의순서가바뀌고서류에글자한자적히지않은채일이해결되는것이다. 리창은두샨베에있는데장쑤의옛부하가곤명으로낙하산인사를타고내려왔으니이는지방에자신이말을전할수있는사람을하나심어두려는것이다. 여기에앞선 2주의사건들을연결해서보면 9월하순허난과안후이의서기와성장이이틀만에한꺼번에경질되었고장쑤성본섬의조직부장과기율검사위원회서기 도차례로새로운얼굴로교체되었다. 리창이장쑤에구축해둔작은기반들이눈앞에서하나씩파헤쳐지고있으니하나라도다른곳으로빼돌려야지켜낼수있는것이다.
마지막은허리펑이다. 허리펑은시진핑측근중가장오래된부류에속하는인물로 1980년대샤먼도시진핑과함께근무했고이후푸저우시위원회서기를지냈으며현재는부총리겸중앙금융판공실주임으로전국의곳간을관리하고있다. 올해 3월파리에서미국의베이센트재무장관, 그리어무역대표와경제무역협상을진행한것도그였다. 미중간의협상이어떻게진행되든외환, 채권시장, 은행의내막을그가모두손에쥐고있기때문에앞으로누가정권을이어받든이장부는반드시거쳐가야한다. 그가마음을먹고다른방향으로장부를넘겨준다면퇴로가없을걱정은없을것이다. 10월 19일허리펑은하루종일바쁘게움직였다. 낮에는러시아부총리와함께중러총리정례회합위원회제 30차회의를공동주재했고저녁에는댜오위타이에서금융감독관리총국국제자문위원회위원들을만났다. 두자리모두그의바로뒤에앉아있던사람은동일인물로기요비서자인안루였다. 중러회의의명패에는러시아어통역으로그의이름이인쇄되어있었다. 이사람이허리펑을얼마나밀착해서보좌하고있는가? 올해 7월허리펑이네이멍구조사를 3일간다녀갔을때도그는허리펑의바로뒤에앉아있었다. 2018년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한보도에서그의소속은발개위판공청위원장판공실, 즉허리펑본인의판공실로표기되어있었다. 발개위에서국무원까지무려 8년을밀착수행해온것이다. 하지만그이전을더거슬러올라가보면 2000년대에서 2010년대초반자인안루는저장대학교에서근무하며광화법학원공청단위원회부서기를지냈다. 생각해보라. 가장출신과라인을따지는관가에서푸젠방의제 1대지기이자시진핑의가장확실한곳간지기이며가장측근에서내막을잘알고있는그사람의바닥에는공청단의붉은끈이매어져있는것이다. 허리펑의문은보기에는오직한쪽으로만열려있는것같지않다.
딩쉐샹은데이터를수집하고, 리창은옛부하를이동시키고, 허리펑의측근은공청단의바탕을품고있으니세사람이각기다른세가지방향으로움직이고있을뿐시진핑을위해문을지키고있는사람은단한명도없다. 그렇다면문제가발생한다. 시진핑을수십 년간따라온이인물들이왜하필이결정적인순간에시늉조차내기귀찮아하는것일까? 먼저디테일하나를보자. 10월 15일 <치우스> 잡지는시진핑의글을한편게재했는데그중에는권력을제도의울타리안에가두어야하며규율앞에는예외도특권도없다는구절이있었다. 이말은시진핑이 14년동안외쳐온것으로줄곧남들에게들으라고한소리였다. 그러나오늘날제 5차중앙위원회전체회의(5중전회)에서심의하게될내용은바로엄격한당정비에관한결정이다. 이말이다시돌아와가장먼저적용되어야할대상은공교롭게도바로시진핑신 자신이다. 그리고그뒤를이어중앙기율위원회와사법부가연이어세개의문을닫아걸었다.
타임라인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9월 21일 정치국 회의에서 5중전회를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개최하기로 결정했으며, 주요 안건은 '지속적으로 전면적인 엄격한 당 관리를 추진하는 것에 관한 약간의 중대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심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날 정치국은 장유샤(张又侠)와 류전리(刘振立)의 당적과 군적을 박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시진핑(习近平)의 계산은 이렇습니다. 경제, 외교, 군사 어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상황에서 반부패라는 간판만 남았으니, 전체 중앙위원들이 손을 들어 이 결정을 통과시키게 함으로써 자신의 14년 숙청 작업에 역사적 성과라는 대형 도장을 찍으려는 것입니다. 도장이 찍히면 나중에 그가 물러날 때 이 문건이 호신부 역할을 할 테니까요. 하지만 이 결정이 통과되려면 중앙위원들의 표가 필요합니다. 며칠 전 언급했듯이 9월 이후 8개 지역의 수장들이 실직 상태가 되었는데, 중앙위원 신분은 유지한 채 다음 거취는 발표되지 않아 모두 공중에 뜬 채 전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손을 들 때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시진핑의 공적 장부가 아니라 자신의 남은 인생입니다. 결정문에 내용이 독할수록 그들은 더 두려워할 것이며, 그 독한 내용이 나중에 누구를 겨냥할지는 펜을 쥔 사람이 누구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시진핑은 자신이 이 문건을 작성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5중전회 이후 이 문건을 집행할 사람이 반드시 그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전회를 앞둔 일주일 동안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첫 번째 문, 은퇴해도 도망칠 수 없다. 10월 21일, 중기위 웹사이트에는 '은퇴한 당원 간부의 규정 위반 재물 수수 행위에 대한 정성 분석'이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중국 공산당 관가에는 '옵션 부패'라는 낡은 수법이 있습니다. 재임 중 토지 허가, 프로젝트 승인, 대출 등을 처리할 때는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찻잎 통조차 집으로 가져가지 않다가, 65세에 평안히 은퇴하면 기업가가 고문료, 골동품, 해외 펀드 등을 통해 10년간 쌓아둔 돈을 원금과 이자를 합쳐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만약 문제가 생겨 심문실에 앉게 되면 두 손을 벌리며 '돈을 받을 때는 이미 은퇴해서 공권력이 없었으니 기껏해야 규율 위반이지 뇌물죄는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규정은 예전부터 있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2007년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의 사법 의견서에도 은퇴 후 돈을 받기로 사전에 약속했다면 뇌물죄로 처벌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글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시점이 새롭습니다. 5중전회 5일 전, 굳이 '은퇴'라는 두 글자를 꺼내 홈페이지에 올린 것입니다. 최근 낙마한 사람들을 보면 10월 13일 황치판(黄奇帆) 전 충칭 시장이 조사를 받았는데, 이 노신사는 올해 74세로 충칭 시장직에서 물러난 지 딱 10년이 되었습니다. 보시라이(薄熙来)가 몰락할 때도, 쑨정차이(孙政才)가 몰락할 때도 무사했던 그를 관가에서는 '오뚝이'라고 불렀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결국 털린 것입니다. 중기위 통보에 따르면 최근 세무총국과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도 은퇴한 지 오래된 국장급 간부 두 명이 조사를 받았습니다. 10월 중순에는 사회보장기금회 부이사장이었던 왕원링(王文灵)도 쌍개(당적·공직 박탈)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들을 종합해 보면 의미는 명확합니다. 인장(권력)을 넘겼다고 안전하게 착륙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년 21대 때 누가 은퇴 간부가 될지, 20대에서 올라온 상무위원들과 시진핑 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 문, 가족이 받은 돈은 당신의 것이다. 같은 날 중기위 웹사이트에는 '친족과 공동으로 뇌물을 수수한 죄책의 경계를 명확히 한다'는 또 다른 글이 올라왔습니다. 중국 공산당 고위 관료들은 직접 자루를 들고 현금을 담으러 다니지 않습니다. 아내, 자식, 형제자매를 앞세워 회사를 차리고 펀드를 운영하며 신탁을 설정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흔히 쓰는 수법이 '가족들이 몰래 한 짓이라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전혀 몰랐다'며 친족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2016년 사법 해석으로 이미 막혔습니다. 관료가 가족이 돈을 받은 사실을 알고도 반환하거나 신고하지 않으면 뇌물로 간주합니다. 그런데 하필 5중전회 5일 전, 굳이 이를 다시 꺼내 강조한 것은 누구를 겨냥한 것일까요? 요즘 가장 좌불안석인 사람은 차이치(蔡奇)입니다. 10월 16일 시진핑이 내몽골 울란차브를 방문했을 때, 평소 그림자처럼 뒤를 따르던 차이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이치는 어떤 인물입니까? 중앙판공청 주임으로서 시진핑이 매일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며, 어떤 문건을 보는지 모두 그의 손을 거칩니다. 이런 대내 총관이 최고지도자의 지방 시찰에 동행하지 않은 것은, 그가 못 가게 했거나 차이치가 빠질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인데 어느 쪽이든 좋은 징조는 아닙니다. 최근 차이치의 고향인 푸젠성에 있는 친형이 한 달 넘게 연행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고향 뒷마당에 불이 났는데 이 대내 총관이 무슨 마음으로 수행하겠습니까?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영국에서 발생한 중국 간첩 사건입니다. 영국인 남성 두 명이 2024년 4월 기소되었다가 작년 9월 검찰이 사건을 취하했는데, 영국 정부가 공개한 증인 진술서에 그중 한 명인 베리가 2022년 7월 차이치를 만났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이 두 사람은 과거 항저우 둥팡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차이치의 아들 차이얼진(蔡尔津)은 당시 이 학교를 관할하던 항저우시 교육국에서 근무했습니다. 고향 친족에 대한 소문과 아들이 연루된 국제 사건이 동시에 터진 이 시점에, 중기위는 친족 공동 뇌물 수수의 경계를 다시 그었습니다. 이 자(尺)가 누구를 먼저 잴지는 차이치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문, 형을 선고받은 뒤 병력을 이용해 나오기도 어려워졌습니다. 10월 19일 사법부 웹사이트에 문건 하나가 게시되었습니다. 사법부, 최고인민법원, 최고인민검찰원, 공안부, 국가위생건강위원회, 국가질병통제국 등 6개 부처가 공동으로 '형집행정지 대상 중증 질환 범위 및 일상생활 불가 판별 기준'을 발표했는데, 쉽게 말해 형집행정지의 문턱을 다시 설정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2014년에도 형집행정지 규정이 있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2014년에는 5개 부처가 함께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질병통제국이 추가되었고, 어떤 병이 중증인지, 어떻게 해야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것인지 하나하나 다시 정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거물급 인사들이 형을 선고받은 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고, 가족들이 연줄을 동원해 병원을 찾으면 병원장이 주치의를 사무실로 불러 문을 닫고는 '노수장(老首长)께서 연세가 많으시고 관상동맥질환에 고혈압까지 있으니 병력을 좀 심각하게 써달라,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병력 기록 한 장과 전문가 의견서 한 장이면 교도소에서 병원으로, 다시 병원에서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전의 구멍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바로 모호한 문구들에 있었습니다. '심각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 '일상생활 불가'가 밥을 떠먹여 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걸을 때 부축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등입니다. 문구가 모호할수록 의사의 펜 끝은 더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제 6개 부처가 이 문구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인 지표로 쪼개 놓았으니 의사가 펜으로 장난칠 여지가 줄어들었고, 기준이 세밀해질수록 이 구멍은 작아집니다. 어느 의사가 5중전회라는 살얼음판 같은 시기에 거물급 인사를 위해 병력을 심각하게 조작할 수 있겠습니까? 세 개의 문을 함께 놓고 보면, 퇴임하면 과거의 장부를 조사하고, 재임 중에는 가족을 조사하며, 형을 선고받으면 병상 하나 차지하기도 어렵습니다. 시진핑의 그 결정은 원래 호신부로 쓰려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시진핑의 군단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적어놓은 목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대관(大管家)들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5중전회의 문이 닫히면, 손에 구명조끼 하나 없는 사람은 누구도 육지로 헤엄쳐 올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문건을 발표하고 기준을 정하는 것보다 더 직접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0월 16일 저녁 한 상장사가 공고를 냈는데, 전 회장이자 90년대생인 젊은 오너가 형사 강제 조치를 당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회사의 시작은 허베이성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한쪽 끝은 시진핑과 리잔수(栗战书)가 처음 시작한 곳과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쪽 끝은 시진핑이 직접 발탁한 문선(文宣) 대원과 연결되어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이 회사의 이름은 ST헝신(ST恒信)입니다. 10월 19일 저녁 공고를 통해 공안 사법기관으로부터 전 회장 멍난(孟楠)이 형사 강제 조치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세부 사항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멍난은 올해 6월 30일 이미 주주총회에서 이사직을 해임당했지만, 회사 사업자등록증상의 법정 대표자는 오늘까지도 그로 되어 있습니다. 회사가 그의 아버지이자 실질적 지배인인 멍셴민(孟宪民)에게 연락해 상황을 알아보려 했으나 아무런 회신이 없었습니다. 34세 아들이 잡혀갔는데 아버지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입니다. 상장사에 문제가 생기면 흔히 증권감독관리위원회가 먼저 입안하여 사람을 보내 장부를 조사하고, 몇 달간 소란을 피우다 마지막에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입니다. 이번 공고에는 그런 전희(前戏)가 보이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바로 형사 강제 조치입니다. 이 회사는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요? 전신은 헝신모바일(恒信移动)로, 허베이에서 시작해 휴대폰 판매와 모바일 부가 서비스로 성장했으며 2010년경 창업판에 상장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설에 따르면, 당시 허베이 휴대폰 TV 서비스의 독점 대리권을 따냈는데, 그 배후에는 당시 허베이 광전 시스템의 관료가 얽혀 있었습니다. 이 비준서 뒤에는 누가 서 있을까요? 시간순으로 파헤쳐 보면 바로 나옵니다. 그 몇 년간 허베이성 전체의 선전과 광전을 총괄하던 성위원회 상무위원 겸 선전부장의 이름은 녜천시(聂辰席)입니다. 녜천시는 2006년부터 허베이성 선전부장을 지냈고, 나중에는 허베이 부성장을 겸임하기도 했으며, 2012년 10월 베이징으로 이동해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부국장이 되었습니다. 18차 당대회 이후 그는 시진핑에게 줄곧 중용되어 2015년 CCTV를 장악했고, 2016년 광전총국 국장이 되었으며, 2018년 국가광파전시총국이 설립되자 초대 국장이자 중앙선전부 부부장을 겸임했고, 19기 중앙위원이었습니다. 이 선의 양 끝을 보십시오. 한쪽은 허베이입니다. 시진핑이 당시 정딩현 현위 서기를 할 때 리잔수는 바로 옆 우지현 현위 서기를 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그때 인연을 맺었습니다. 나중에 리잔수는 다시 허베이로 돌아와 몇 년간 성위원회 비서장을 지냈으니, 허베이는 이 두 사람의 정치적 뿌리입니다. 다른 한쪽은 시진핑이 직접 전국적인 언론의 목소리 위치에 앉혀 여론의 생명줄을 지키게 한 사람입니다. 어떤 분들은 젊은 오너 한 명이 잡혀간 것이 어떻게 중앙위원과 리잔수까지 연결되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우리 한번 관점을 바꿔 생각해 봅시다. 민영 기업이 허베이에서 휴대폰 사업과 모바일 사업을 하려면 면허를 따야 하고 채널을 확보해야 하며, 통신사 및 광전 시스템과 교류해야 하는데, 그 모든 문 뒤에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 지금 경찰이 직접 사장을 잡아갔으니, 첫 번째로 물어볼 것은 이 문들을 당시 누가 열어주었느냐는 것입니다. 수사관들이 멍씨 부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한 회사의 장부만이 아닐 것입니다. 허베이에서 지난 몇 년간 특허 경영을 어떻게 허가했는지, 문선 통로는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차명 주식과 이익은 어떻게 나누었는지, 장부 하나가 펼쳐지면 어디까지 불길이 번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무대 앞의 인물들은 서로 바쁘기만 하다. 리창은 10월 15일에 중조(중국-북한)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위한 영상 축사를 보냈고, 17일에는 출국해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의 상하이협력기구 회의를 거쳐 러시아까지 방문하며 강행군을 이어갔다. 딩쉐샹은 슝안에서 현판식을 가졌고, 허리펑은 댜오위타이에서 외빈을 접견했다. 하지만 지난 보름 동안 관영 보도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바로 후춘화다. 9월만 해도 후춘화의 언론 노출은 꽤 빈번했다. 꼼꼼한 이들이 주목했듯, 9월 11일 왕후닝이 앙골라 국회의장을 접견할 때 후춘화를 자신의 오른쪽에 앉혔고, 9월 30일 국경절 리셉션에도 그가 참석했다. 그러나 국경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지금까지 무려 2주일 동안 보도에서 그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정협 부주석이 2주일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게 대수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먼저 후춘화가 지난 4년 동안 어떻게 버텨왔는지 되짚어 보자. 올해 63세인 후춘화는 베이징대를 졸업하자마자 신장으로 갔고, 그곳에서 전후로 거의 20년 가까이 머물렀다. 이후 공청단 중앙 제1서기, 허베이성장, 네이멍구 서기, 광둥성 서기, 국무원 부총리를 거쳤으며, 제18차 당대회에서 이미 정치국에 진입해 당시 60년대생 차기 지도자 후보로 공인받았다. 2022년 제20차 당대회 당시 후춘화는 겨우 59세로 나이 상으로 충분히 연임할 수 있었음에도 정치국조차 들어가지 못하고 전국정협 부주석으로 좌천되었다. 바로 그 대회 폐막식 무렵, 노후(후춘화)는 전 세계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주석단에서 끌려 나가다시피 퇴장당했다. 그날 시제(시진핑)는 후진타오와 그의 사람들을 권력의 중심에서 함께 내쫓았다. 지난 4년 동안 후춘화는 정협에서 거의 말을 아끼고,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으며, 눈에 띄지 않게 지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 들어 그의 자리와 언론 노출이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더니 9월 말에는 갑자기 또 조용해졌다. 그렇다면 중국공산당 역사상 진정한 후계자가 결정되기 전의 모습을 살펴보자.
1989년 5월, 베이징 시내가 혼돈에 빠졌고 외부의 시선은 모두 무대 위의 몇몇 사람들에게 쏠려 있었다. 총서기의 인장을 진정으로 이어받은 장쩌민은 당시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였으며, 5월 말 조용히 베이징으로 불려 들어가 딩샤오핑을 만났다. 사전에 밖에서는 그가 될 것이라 짐작한 이가 거의 없었다. 6월 하순 제13기 제4차 전원회의가 열리자 장쩌민은 곧바로 총서기가 되었다. 장쩌민뿐만 아니라 시제 본인도 그 당시 이런 과정을 거쳐 올라왔다. 2007년 3월, 시제는 저장성에서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로 자리를 옮겨 상하이에서 총 7개월을 보냈다. 그 7개월 동안 그는 큰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과격한 말을 하지도 않았다. 외부 사람들은 모두 리커창을 점치고 있었으나, 10월 제17차 당대회 제1차 전원회의에서 상무위원들이 줄지어 걸어나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시제는 리커창의 앞에 섰다. 무대 앞이 시끌시끌할수록 그저 시선을 분산시키는 용도일 가능성이 높으며, 진정으로 권력을 이어받을 사람은 판을 뒤집기 전까지 대개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다. 하물며 지금의 국면은 그때보다 훨씬 더 험악하다. 장유샤가 9월에 당적과 군적을 박탈당했고 군 고위층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원로들과 군부 입장에서 누군가를 권력의 꼭대기에 밀어 올릴 때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그 사람이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거나 구설에 오르는 것이다. 그를 스포트라이트 바깥에 보호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배치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런 의문도 제기된다. 설령 제5차 전원회의에서 후춘화가 총서기로 추대된다 하더라도 국가주석 감투는 여전히 시제의 머리에 씌워져 있고,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려야 교체할 수 있는데, 이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후춘화는 어떤 신분으로 각국 원수들과 대등하게 마주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37년 전에 제시된 적이 있다. 1989년 6월 장쩌민이 총서기에 올랐을 때 당시 국가주석은 누구였는가? 양상쿤이었다. 1993년 3월 제8기 전인대에 이르러서야 장쩌민은 비로소 국가주석직을 넘겨받았고, 그 사이 거의 4년 동안 국가원수의 칭호는 양상쿤에게 있었다. 장쩌민의 손에 쥐어진 것은 무엇이었는가? 1989년 11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이어받았고, 1990년 4월 전인대에서 국가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추가로 보완받았다. 당의 최고 지도자와 총칼(군권)만 쥐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외국인들이 이를 인정했는가? 1990년 3월 장쩌민이 취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첫 해외 순방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이 직접 공항까지 마중 나왔고, 1991년 5월 장쩌민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고르바초프가 크렘린궁에서 그를 영접했으며, 중소 양국 외교장관이 두 사람 앞에서 동단 국경 협정에 서명했다. 보라, 누가 중국의 진정한 최고 지도자인지 전 세계 국가들은 다 알고 있었고, 그들이 인정한 것은 명함에 찍힌 직함이 아니었다. 게다가 장쩌민이 당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세력 기반 덕분이 아니었다. 그는 베이징에 자기 사람이 없었고 군대 내에서도 이력이 부족했다. 그를 떠받쳐 준 것은 딩샤오핑과 원로들이었으며, 여기에 양상쿤이 쥔 군대가 더해졌던 것이다. 총서기 자리는 신임자에게 내주고, 국가주석 자리는 원로에게 남겨 과도기를 거치게 하며, 총칼은 원로들이 감시하는 이 판 짜기는 그때도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의 국면이 어찌 이와 그리 닮지 않았겠는가? 원로들이 막후에서 버티고 있고, 중앙군사위원회의 일상은 장성민이 주도하고 있으며, 시제의 머리 위에 얹힌 국가주석 감투쯤은 그가 몇 달 더 쓰게 내버려두어도 무슨 상관이겠는가? 감투야 그대로 있겠지만, 칼자루는 이미 그의 손을 떠난 지 오래다. 후춘화의 머리 위에 있는 정협 부주석 감투야 더욱 처리하기 쉽다. 그가 총서기가 된다면 매번 정협 주석 회의가 열릴 때마다 왕후닝의 아랫자리에 앉아 보고를 들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전국정협 회의를 한 차례 소집해 사임하면 그만이다. 이 얇은 창호지만 뚫어버리면 제5차 전원회의에서의 물갈이는 기술적으로 넘지 못할 고비가 없다. 무대 앞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일수록, 조용히 물러나 있는 그 사람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진다. 시가군(시제 일파)이 해산하는 것은 누군가 해산하라고 고함쳐서가 아니라, 배에 탄 그 사람을 이제 누구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10월 26일 징시호텔의 문이 닫히게 된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나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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