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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청펑: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투사이다

1층 · 글쓴이 작성자:張無忌 게시일:2024-08-18 04:10 답글:0 조회:67 이 글의 링크:fanzei.net/d_2222hd

리청펑/글

어릴 적 일본 영화 <모래 그릇>을 보았다. 전후 일본 간토 지방에서 땅을 잃고 떠돌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험한 산길을 헤매고, 폭우 속을 길을 재촉하고, 눈밭에서 구걸했다. 어느 날 아들이 부잣집 아이들에게 맞자, 여린 아버지의 몸으로 필사적으로 주먹과 몽둥이를 막아내다 도랑에 굴러떨어졌다. 또 한 번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아버지가 죽을 끓여 아들에게 먹이려 했으나 아들이 먼저 먹으라며 사양했다. 둘은 서로에게 죽을 먹이려다 입을 데어 아파서 제자리에서 뛰다가도, 이내 서로를 껴안고 크게 웃었다.

이 따뜻한 장면을 보고 나는 울었다. 왜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 아버지는 나중에 나병에 걸려 강제로 병원에 끌려갔고, 아들은 길거리에 버려져 한 착한 가정에 거두어졌다. 나중에 아들은 도쿄로 도망쳐 우연히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고, 촉망받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명성을 떨치던 무렵 금융업자의 딸을 만나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을 때, 이전의 양아버지가 TV에서 그를 발견하고 친아버지에게 데려갔다. 당시 일본은 가문과 출신을 중시했기에, 그는 자신의 출신을 숨기기 위해 역에서 양아버지를 죽였다. 이후 수사 과정은 복잡해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만은 기억난다. 형사들이 피아니스트의 사진을 나병 환자 수용소에 있는 친아버지에게 건네자, 아들을 위해 친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인하며 사진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이 장면은 일본 인간 드라마 영화 중 가장 명장면으로 꼽힌다. 영화관 사람들은 훌쩍거렸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그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아버지가 된 후였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투사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천안문 성루의 위대한 영수처럼 영명무쌍하지도 않고, 중국 드라마 <지극히 영광스러운>의 남자 주인공처럼 위엄이 넘치지도 않으며, 심지어 뤄중리 유화 <아버지>의 구릿빛 피부에서 풍기는 근면함과 강인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 대부분은 삶에 찌들어 얼굴에 빛이 없고, 크고 작은 질병을 앓으며, 젊은 나이에도 쇠약하거나 초라해 보이고, 감정적으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을 깊이 사랑한다. 어리석고 용감한 일개미처럼, 단 한 번의 노동도 빠뜨리지 않는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쓰레기를 줍는 할아버지가 계신데, 성함은 모르겠다. 지저분한 쓰레기 할아버지가 아니라 옷차림이 단정했고, 사람을 보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의 수레에는 종이 상자, 헌 옷, 콜라병이 가지런히 분류되어 있었다. 상태가 좋은 소형 가전제품을 발견하면, 내심의 환희를 감추고 조심스럽게 먼지를 닦아 부드러운 천을 깐 상자에 담았다. 그 섬세한 보살핌은 그가 마치 갓 태어난 아기를 다루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라 생각했는데, 아들이 이 도시에서 일한다고 했다. 아들이 불효자라 생각했는데, 아들도 아버지가 쓰레기를 줍는 것을 극구 반대했고, 한 번은 아버지를 집에 가두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쓰레기 할아버지는 몰래 빠져나와 쓰레기를 줍고, 아들에게는 회사에서 일자리를 구했다고 거짓말했다.

그는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종이 상자를 수거했다. 우리 어머니는 그에게 식사를 대접했고, 그는 매번 우리가 모시는 관음보살에게 공손히 절하며 정화수와 과일을 바꿔주었다.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쓰레기를 주우러 나올 때마다 좋은 옷을 입어야 경비원들이 쫓아내지 않고, 아들에게도 창피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아들이 커서 결혼할 때가 되면 도시에 집을 사줘야 한다며, 자신이 쓰레기를 반년만 더 주우면 계약금을 마련할 수 있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반년이 지났고, 수많은 반년이 지났지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집값은 너무 빨리 올랐고, 그가 쓰레기를 줍는 속도는 집값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의 구부정한 허리는 집값에 비해 더욱 두드러졌다.

중국의 아버지들은 세계의 아버지들과 조금 다르다. 알려진 이유로, 그들은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 존엄을 희생해야 한다. 매일 쓰레기를 줍는 저 할아버지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다른 예로 불법 노점상이었던 샤쥔펑은 매우 불운했다. 그는 아들이 그림을 그릴 돈을 벌기 위해 길거리에서 노점을 했을 뿐인데, 거대한 도시는 그가 운영하던 바비큐 노점 하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성관(도시 관리 단속반)에게 욕설과 폭행, 급소를 걷어차이는 모욕을 당했고, 반격 끝에 결국 살인에 이르게 되었다. 여린 그가 칼을 휘둘러 거구의 성관을 찌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개미가 태산을 흔들려는 듯한 절망감이 마음속 깊이 느껴질 것이다.

내 아버지는 삼류 음악가였다. 영화 <위대한 탈출>에 나오는 지휘자처럼 성급하고 신경질적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는 나에게 피아노를 강요했고, 내가 따르지 않거나 틀리면 심하게 때렸다. 나는 몸이 날렵하고 피하기를 잘해서, 어느 날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신장 병단 시절의 침대는 반 개 반이 숨을 수 있었다). 아버지도 따라 들어왔고, 나는 안에서 빗자루로 저항하다가 침대 판자가 무너져 아버지가 코뼈에 피를 흘렸다. 그는 코에 피 묻은 휴지를 틀어막고, 엄숙한 표정으로 네 시간 동안 피아노 연습을 감독한 후에야 만족스럽게 웃으며 부엌으로 가서 나에게 라몐을 끓여주었다.

그날 밤 우리는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창밖은 신장의 전형적인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좋지 않은 출신 때문에 음악의 꿈이 좌절되었다고 다시 말하며, 나에게는 반드시 음악의 꿈을 이루라고 했다. 갑자기 침대에서 뛰어내려 부엌으로 달려가 젓가락을 잡고, 카라얀처럼 두 팔을 휘저으며 '운명 교향곡'을 지휘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카라얀은 멋진 흰 머리카락을 가졌지만, 아버지는 대머리였기에 더 요리사처럼 보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돼지고기(신장에서는 돼지고기를 '큰 고기'라고 불렀다)를 배급받았는데, 날이 추워 고기가 너무 단단해 칼로 썰리지 않았다. 나와 아버지는 마당에서 도끼로 고기를 내리쳤다. 치다가 내가

불에 타는 듯한 고통. 하지만 점차, 언제인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를 평생 보호하고, 돕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세상의 풍경을 보게 하고, 심지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약속 없이도 알았다. 소위 부자(父子)의 은혜란, 앞서가는 당신이 뒤따르는 나를 이끌고 세상을 구경시켜 주다가, 결국 이별하게 되고, 당신은 쓰러져 풍경이 되고, 나는 다음 풍경이 되는 것이다.

가끔 중국 아버지들이 느끼하고, 나약하고, 형편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북미의 햇살을 흠뻑 뒤집어쓴 아버지들을 중국 아버지들에게 들이대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춘절 기간, 농민공 아버지들이 장거리 기차 창문으로 번개처럼 솟아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거친 몸짓, 보기 흉한 표정으로 좌석을 잡으면 큰 소리로 외치고, 겨우 앉으면 바쁘게 뜨거운 물로 라면을 끓여 먹고, 거친 손으로 사과를 닦아 아이에게 먹였다. 요즘 소위 '중산층' 아버지들은 주택 대출을 갚고, 학교 선택 비용을 모으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가 갑자기 책상 앞에서 졸도한다. 아이들의 출발선을 위해 뛰었지만, 결국 자신의 종착선에 도달했다. 그들은 사자처럼 싸우고, 시골 개처럼 살며,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아이들에게 자신의 비참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비참함을 발견하면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비참함이기 때문이다. 그 해, 내가 인민대표 대회 대표로 출마하면서 몇 가지 일이 있었는데, 커자이가 울면서 더 이상 테니스를 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테니스를 치도록 매일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나는 웃으며 그를 속였다. "너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사실 돈이 아주 많아. 나는 사실 몰래 부자란다. 봐, 이 저금통장, 이 은행 카드…" 그는 매우 믿었고, 나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 독창단 잡지 인터뷰에서 "리따옌(李大眼)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민을 보낼 것인가?"라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나는 나의 비참한 노력을 조심스럽게 숨기고, 그가 이런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나는 열심히 일하고, 매일 수염을 깨끗이 깎고, 단정한 옷을 입고, 마음을 알 수 없는 거리를 걸으며,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자신감 있게, 남에게 뒤처지지 않고, 남에게 앞서가지 않으면서 살아야 한다. 나는 아이가 나의 비참함을 알아차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원제: 리청펑(李承鹏) 잡문집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안다", 2020년 모월 모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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