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은 극도로 겸손한 자기 서술을 써서 자신이 자본주의자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복권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장랑랑은 항저우에서 체포되었으며, 중앙 지도부를 악의적으로 공격했다는 등의 혐의를 받았다. 당시 위창성(俞强声)이 전안조 조장을 맡아 심리를 진행했다.
1968년 장칭은 경극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류사오치를 대형 특무 및 배신자로 선포했으며,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수많은 정치인과 지식인이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1968년에 대학원을 졸업한 원자바오는 투쟁 대회에서 구타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우경파로 몰려 간쑤성 주취안 농장에 보내져 1년간 강제 노동(노개) 처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