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4월 23일
덩샤오핑은 국무원 총리 리펑를 소환해 이를 '동란'으로 규정하며, 후속적인 진압 작전의 기조를 정했다.
1989년 4월 27일
20만 명 이상의 학생과 10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유명한 '4·27 대행진'을 개최하며 학생 운동을 지지했다.
1989년 4월 26일
인민일보는 “이 사태에 대해 명확히 반대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하며 학생 운동을 사태로 규정했다.
1989년
권력 위기가 다가오자 덩샤오핑은 탱크와 기관총을 동원해 학생 운동을 진압하며 중국의 자유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