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0일
10월 10일 쌍십절에 중국 네티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쑨원을 기리며 '천하위공(天下爲公)'과 '국가는 한 사람의 나라가 아니다' 등 쑨원의 견해를 내걸어 경의와 민주·자유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1927년 4월 12일
장제스가 상하이에서 청당을 시작하여 다수의 기층 국민당원 및 공산당원이 숙청되었고, 이로 인해 당내에 역도태 현상이 나타났다.
1927년 3월
우한 국민정부가 반혁명죄 조례를 공포하며 반혁명죄 혐의가 중국 법률에 처음으로 명시되었다.
1926년
1926년 마오쩌둥은 글을 써서 누가 우리의 친구이고 누가 우리의 적인가를 가리는 것이 중국 혁명의 관건 문제라고 제기했으나, 그 글에서 적과 아군을 규정하는 기준은 이후 끊임없이 변동되었고 계급적 적의 범위는 계속 확대되었다.
1920년
1920년 천경명(陳炯明)이 광둥에서 '광둥인의 광둥 통치'를 제안하며 비교적 철저한 지방 자치를 주장했고, 이후 연방 또는 연합을 구성한다면서 독립을 앞에 두고 주권을 먼저 인민에게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913년 3월 20일
송교인의 상하이 암살로 국민당이 국회 다수를 통한 조각 가능성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