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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궈펑 · 전체 연대기와 역사의 흐름

1981년 6월 27일
중국공산당 11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가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열렸으며, 화궈펑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에서 물러나고, 후야오방이 주석직을 이어받았으며, 덩샤오핑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이어받았다.
장소: 베이징시, 중국 · 중요도 V · 검증 상태: 확인됨 · 인과관계 보기 →
1980년 9월 10일
1980년 9월 10일,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3차 회의(8월 30일~9월 10일)는 화궈펑의 국무원 총리직 사임을 수락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자오쯔양을 국무원 총리로 결정했다.
장소: 베이징시, 중국 · 중요도 V · 검증 상태: 확인됨 · 인과관계 보기 →
1980년 2월 23일
중국공산당 11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가 2월 29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려 중앙서기처를 복원하고 후야오방을 총서기로 선출했으며,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은 정치국 상무위원에 추가 선출되었고, 왕둥싱 등 4인이 사퇴했다.
장소: 베이징시, 중국 · 중요도 V · 검증 상태: 확인됨 · 인과관계 보기 →
1978년 5월 11일
덩샤오핑은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임을 강조함으로써 화궈펑을 타도하고 경제 발전을 핵심으로 하는 통치 기조를 확립했다.
장소: 중국 · 중요도 IV · 검증 상태: 확인됨 · 인과관계 보기 →
1977년 2월 7일
1977년 2월 7일, 『인민일보』는 「문건을 잘 배우고 강령을 붙잡다」라는 사설을 실어 "모주석이 내린 결정은 우리가 확고히 옹호하고, 모주석의 지시는 우리가 한결같이 따른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두 가지 무엇'이라 불렸다. 화궈펑은 이 원칙을 고수한 것으로 지목되었다.
장소: 중국 · 중요도 IV · 검증 상태: 확인됨 · 인과관계 보기 →
1976년 10월 6일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화궈펑은 10월 6일 예젠잉 등과 함께 사인방을 제거했고, 그날 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그보다 앞서 4월 30일 마오쩌둥은 그에게 “네가 알아서 처리하면 나는 안심이다”라고 써주었다.
장소: 중국 · 중요도 IV · 검증 상태: 확인됨 · 인과관계 보기 →
1976년 10월 6일
1976년 이후 화궈펑은 중국공산당 중앙 주석, 국무원 총리,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동시에 겸임했다.
장소: 중국 · 중요도 III · 검증 상태: 확인됨 · 인과관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