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은 성대한 열병식을 개최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급속히 붕괴했다
동독은 1989년 10월 7일에도 성대한 열병식을 거행했으나, 막대한 부채와 지도부의 1989년 6·4 톈안먼 사건 지지가 민심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면서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크렌츠가 총서기로 취임한 후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중국공산당 고위층과 맹목적으로 악수한 것이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고, 결국 1년도 안 된 1990년 10월 3일 서독에 흡수되었다.
동독은 1989년 10월 7일에도 성대한 열병식을 거행했으나, 막대한 부채와 지도부의 1989년 6·4 톈안먼 사건 지지가 민심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면서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크렌츠가 총서기로 취임한 후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중국공산당 고위층과 맹목적으로 악수한 것이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고, 결국 1년도 안 된 1990년 10월 3일 서독에 흡수되었다.
1989년 10월 동독 민중이 라이프치히, 베를린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호네커는 물러나야 했으며, 동독공산당은 새로운 정치국을 구성하고 크렌츠가 서기장에 취임했다.
위마오춘의 말에 따르면, 6·4 톈안먼 사건 두 달 뒤인 1989년 8월 동독 신임 서기장 크렌츠가 중국을 방문해 리펑, 덩샤오핑과 악수했고, 이는 동독 민중의 저항 정서를 더욱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