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사후 베리야가 내무부와 국방부를 장악
스탈린이 숨진 당일, 특무 수장 베리야는 권력 찬탈에 나서 내무부와 국방부를 자신의 수중에 넣은 뒤, 대규모 수감자 석방을 추진했다.
스탈린이 숨진 당일, 특무 수장 베리야는 권력 찬탈에 나서 내무부와 국방부를 자신의 수중에 넣은 뒤, 대규모 수감자 석방을 추진했다.
스탈린 사망 후, 마오쩌둥은 자신에 대한 구속이 느슨해진 것을 느끼고, 독립 자주의 착각을 시작했으며, 흐루쇼프를 깔보았다.
중공 건정 전, 마오쩌둥은 스탈린에게 특별히 보고했으며, 최종적으로 수도를 베이징으로 정했다.
스탈린은 두 통의 긴급 전보를 보내, 항전 종결 직후 내전을 시작하는 것은 민족의 자멸이 될 것이라고 중공에 경고했다.
스탈린의 거센 압력으로 마오쩌둥은 국민당과 협상하기 위해 충칭으로 가야만 했다.
스탈린이 《유물변증법》 교과서를 집필할 때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 원칙을 삭제했고, 마오쩌둥은 이후 확정본을 집필할 때 이 처리를 그대로 따랐다.
1937년, 소련 붉은 군대의 우수한 투하쳅스키 원수가 나치 독일과 결탁하여 스탈린을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살해되었으며, 이는 스탈린이 적국과 내통했다는 죄명을 이용해 명망 있는 장성들을 숙청한 전형적인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소련은 마오쩌둥을 위해 러시아어 판 저작집을 전담 출판하고 소전을 집필했으며, 이는 그가 스탈린의 특별한 보호와 정치적 포장을 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