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본(作業本): '중국어 진공 시간대'에 진입한 듯
1
지금은 일종의 "중국어 진공 시간대" 상태에 진입한 것 같다.
인재(人災)를 목격하고 35명이 사망했다는 통고 한 장을 보아도, 사람들은 한숨도 쉬지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어떠한 감정 표현도 없다. 마치 사람들은 그저 통고 한 장을 기다렸던 것 같고, 통고가 오면, 어, 35명이네, 하고 만다.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이어서 더우인(抖音)과 콰이쇼우(快手)를 스크롤하러 간다.
심지어, 이에 대한 감정을 준비하기도 전에, 우시(无锡)에서 또 사건이 발생했다.
2
뉴스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뉴스가 아닌 주된 이유는 통고를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파란 바탕에 흰 글씨의 빈도를 통계 낼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이미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를 묻지 않고, "그냥 이런 것"에 적응한다.
이것은 하나의 생활 상태이다.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어쩌겠는가, 그냥 이렇게 두자, 그렇지 않으면 또 어쩌겠는가.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다.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보면, 설령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3
아마도 죽은 이의 친족들만이 감정을 느낄 것이다. 슬픔과 분노, 망연자실과 비애를.
하지만, 사람들은 누가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몇 명이 죽었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데, 누가 죽은 이의 친족이 어떻게 지내는지 신경 쓰겠는가.
4
생활 속에서 뉴스나 미디어라는 매체가 사라지면서 진공 상태가 나타났다.
아마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진공이 나타난 문제는 진공이 아닌 상태를 구성하는 많은 분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자의 주요 기능은 의심하고 믿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다.
5
진공 상태 속에서, 모두가 꾸미는 것이 귀찮아져서, 아예 꾸미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진실을 필요로 하지 않고, 추궁할 필요도 없으며, 책임 추궁 여부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
거짓말을 못 본 척하는 상태로 합리적으로 존재함을 인정하고, 기만 또한 합리적인 상태로 존재하며, 질책이나 훈계 또한... 마찬가지로 합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거짓말에 무감각해져서, 왜 거짓말을 하는지 묻는 것도 귀찮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묻는 것도 귀찮다. 모두가 절차대로 움직이며, AI보다 더 AI 같아져서, 스스로 각자의 종점을 향해 걸어간다.
종점이 사고인지, 무작위인지, 굶어 죽거나 치여 죽거나, 배 터져 죽거나 웃다 죽거나, 노환이나 병사... 어차피 죽는 건 매한가지라고 느끼며, 사람들은 죽는 방식조차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6
일찍이 존재한 적 없는 진공 상태가 나타났다. 모든 것에 대해 감정도, 반응도, 목소리도 없다... 모든 발생과 존재가 기본값이 되어버렸다.